나의 첫 DSLR 캐논 EOS 350D
주말을 맞아 오래된 기억 속을 정리(?)하다가 찾아낸 녀석이 있었습니다. Canon EOS 350D 저의 첫 카메라. 그립부 고무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 살짝 끈적거렸고, 렌즈 캡 앞면에는 여기저기 부딪히며 생긴 잔스크래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게 마지막 기억입니다. 당시 월급을 몇 달 동안 꼬박 모아 손에 쥐었던 내 인생 첫 DSLR이었는데, 스마트폰 카메라 화질이 2억 화소를 넘나드는 요즘 세상에 다시 마주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원 레버를 켜자마자 특유의 낮고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뷰파인더 안쪽에 초록색 정보창이 켜지던 녀석이었어요. 작은 모니터로 사진을 확인하던 요즘의 미러리스와 달리, 유리 프리즘 너머로 세상을 직접 들여다보며 반셔터를 누르던 그 시절의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 카메라를 중고로 구하기도 어려워졌죠. 하지만 사진이라는 취미의 첫 발을 떼게 해 주었던 도구로서, 이 녀석이 남겨준 기억과 사용감은 여전히 각별합니다.

800만 화소와 손톱만 한 액정
2005년 봄 출시 당시 캐논 350D의 스펙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보급형 기종에서는 드물었던 800만 화소 CMOS 센서를 달고 나왔고, 크기와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여 ‘보급형 DSLR의 신기원’이라는 평가를 받았죠. 하지만 오늘날 기준으로 돌아보면 헛웃음이 나올 만큼 투박한 구석이 많습니다. 특히 후면에 달린 1.8인치 크기의 TFT LCD 모니터는 해상도가 11만 5천 화소에 불과해, 내가 찍은 사진의 초점이 제대로 맞았는지조차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떠올려보면 그마저도 낭만이네요ㅎㅎ
재미있는 점은 바로 그 열악한 액정 덕분에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카메라는 찍자마자 넓고 선명한 화면으로 확대해서 칼초점 여부를 바로 확인하지만, 350D를 들고 다닐 때는 오롯이 뷰파인더 안의 7개 측거점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삑 하는 전자음과 함께 빨간 불이 번쩍이는 순간을 믿고 숨을 멈춘 채 셔터를 눌렀죠. 집에 돌아와 본체에서 두툼한 CF 메모리카드를 뽑아 리더기에 꽂고, 17인치 볼록한 CRT 모니터로 사진이 뜨는 그 몇 초의 기다림이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초점이 잘 맞은 사진들을 고르는 재미가 있었죠!
표시창이 작고 답답한 것은 단점이었지만 역설적으로 한 컷 한 컷을 훨씬 진중하게 찍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도록 두 팔을 옆구리에 단단히 붙이고, 수동 모드에서 다이얼을 돌려 노출 게이지를 0에 맞추는 과정 자체가 정말 중요한 시대였죠. 빛의 밝기와 셔터 속도의 상관관계를 뼈저리게 학습할 수 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거의 90%를 카메라가 알아서 찍어주는 기분이죠. 생각하고 고민할게 없어요. 편리하지만 뭔가 아쉬운? 자동차로 치면 완전자율로 인해 운전자의 비중이 거의 사라진 기분이랄까…
손끝에 감기던 번들렌즈와 거친 그립
플라스틱 마운트와 18-55mm 번들의 추억
당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던 저에게 조리개 2.8 고정 줌렌즈나 L렌즈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꿈의 영역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본체와 함께 묶여 팔리던 기본 구성품인 EF-S 18-55mm f/3.5-5.6 번들렌즈를 물려 썼죠. 렌즈 마운트 부분마저 금속이 아닌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서 마운트할 때마다 삐걱거리는 느낌이 났고, 포커스를 잡을 때마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지이잉 하고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그래도 ‘번들의 제왕’이 되겠다며, 이 렌즈 하나로 못찍을 사진은 없다고 스스로 위안하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 렌즈 하나만으로도 사계절을 전부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봄에는 55mm 끝단으로 당겨서 개나리꽃 뒤를 흐리게 날리는 아웃포커싱 연습을 했고, 18mm 광각으로 친구들의 단체 사진을 남겼습니다.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이 어두워 해 질 무렵만 되면 손떨림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지만, 그 덕에 셔터 스피드가 1/30초 이하로 떨어졌을 때 주변 벽이나 가방을 받침대 삼아 버티는 온갖 기상천외한 촬영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죠.
스펙의 부족함을 몸으로 메우려 애쓰던 그 시간들이 사진의 기초 체력이 되었습니다.
남성 손에는 다소 어색했던 소형 바디 그립감
당시 전작이었던 300D에 비해 바디 부피를 대폭 줄이면서 휴대성은 좋아졌지만, 막상 손에 쥐었을 때의 감각은 호불호가 상당히 갈렸습니다. 성인 남성 평균 손 크기만 되어도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아래로 완전히 허공에 헛도는 이른바 핑거 행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무거운 렌즈를 끼우면 손가락 관절에 상당한 피로감이 누적되곤 했습니다.
결국 많은 사용자들이 아래쪽에 결합하는 세로그립(BG-E3)을 추가로 장착하곤 했습니다. 배터리 두 개가 들어가면서 사용 시간도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동시에 작고 가볍다는 350D 본연의 장점은 사라져 버리는 딜레마가 생겼죠. 하지만 저는 그립조차 맘놓고 살 수 있는 여력이 안되었었죠ㅠㅠ 사진기가 있는 게 어디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립을 구하게 되었죠. 가볍게 나들이를 떠날 때는 바디 단독으로 들고나가 스냅사진을 찍었고, 각 잡고 출사를 나갈 때는 무거워진 세로그립을 장착한 채 묵직한 손맛을 즐기곤 했습니다. 하나의 기기 안에서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크기와 형태를 변형해 가며 사용하던 재미가 쏠쏠했던 기종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립일체형 바디가 눈에 들어오는 부작용이 생겼죠…

요즘 카메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색감과 기계음
캐논 EOS 350D에는 영상처리 엔진으로 당시 최신이었던 DiGiC II 프로세서가 들어있었습니다. 요즘 카메라는 명암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극도로 정밀하게 윤곽선을 살려내지만, 당시의 350D 결과물은 어딘가 모르게 수채화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강했습니다. 특히 인물 피부 톤을 화사하고 붉은빛이 감돌게 표현해 주는 특유의 세팅 덕분에 여자친구나 가족을 찍어줄 때 반응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노이즈 억제력은 열악했습니다. ISO를 400 이상으로 올리는 순간 암부에 모래알 같은 컬러 노이즈가 자글거리기 시작했고, 최대 감도였던 ISO 1600은 사실상 실내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가 아니면 쓰기 힘들 정도로 거칠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거친 입자감이 흑백 모드로 변환했을 때 필름 그레인 특유의 투박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곤 했습니다. 깨끗하고 완벽한 이미지보다 오히려 덜 다듬어진 거친 결과물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좋았죠.
무엇보다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것은 ‘철컥-착’ 하고 울리던 미러 박스의 셔터음이었습니다. 전자식 셔터의 인위적인 무음 촬영이나 미러리스의 가벼운 전자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물리적인 타격감이 있었죠. 셔터를 끊어 칠 때마다 손바닥 전체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고, 내가 한 장의 사진을 완벽하게 박제했다는 물리적 신호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서랍에 오래 방치해 둔 카메라를 작동시킬 때는 배터리실 안쪽에 누액 흔적이 없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오래된 메모리 카드는 내부 핀이 휘어지는 에러(Err 99 등)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슬롯에 밀어 넣을 때 절대 힘으로 누르지 말고 부드럽게 체결되는지 각도를 살피는 것이 안전합니다.
350D 관련 자문자답
오랜만에 350D를 들고 집 앞 골목길을 한 바퀴 걸으며 셔터를 눌러보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최신 기기처럼 얼굴을 자동으로 인식해 따라가는 초록색 네모 상자도 없고, 손떨림 방지 장치도 없어 숨을 고른 뒤 조심스레 눌러야 했지만 그게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었죠.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빛의 방향을 살피고 내 호흡을 가다듬던 그 시절의 순수한 집중력이 그립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중고 거래 장터에서 만 원짜리 몇 장에 거래되는 철 지난 고철 덩어리일지도 모르지만 제게 캐논 EOS 350D는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세상을 프레임 안에 가두어 바라보는 시선을 처음 가르쳐준 다정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이제 이어질 내용들을 통해 공개되겠지만, 지금까지 이어져온 사진 인생의 서막을 함께 했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