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알루 입문기] 알루미늄 키보드의 매력을 처음 알게 해준 갤럭시80 PRO

플라스틱 기계식 키보드에 관심을 갖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너무 자연스럽게 묵직한 금속 하우징이 주는 타건감을 동경하게 됩니다. 독거미, RS8 이후, 기계식 키보드에 눈을 뜬다음, 가격에서 별 차이가 없던 풀알루 키보드는 어디 없나…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풀알루미늄 키보드의 매력을 처음으로 알려준 주인공은 바로 VTER 갤럭시80 PRO(Galaxy80 PRO)였습니다. 지금이야 크러쉬80이나 레이니75 같은 완성도 높은 알루미늄 모델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티몬 특가로 5만 원 남짓한 가격에 풀알루미늄 하우징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아까운 티몬 ㅠㅠ

VTER 갤럭시80 PRO 풀알루미늄 키보드 블랙 그라데이션 정면 배열

▲ 첫 풀알루미늄 입문기였던 VTER 갤럭시80 PRO. 우측 방향키 옆 별똥별 각인이 특징입니다.

5만 원대에 경험한 묵직한 알루미늄 하우징

박스를 처음 들어 올렸을 때 손목에 전해지던 묵직한 무게감은 플라스틱 기성품 키보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각이었습니다. 은은한 펄감이 감도는 블랙 아노다이징 알루미늄 상하판 하우징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짙어지는 블랙 그라데이션 키캡 조합은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괜히 쳐다보거나, 뭐라도 타이핑을 할게 없나 찾게 만들었습니다.

갤럭시80 PRO 항공 코일 케이블과 주황색 포인트 키캡 장착 모습

▲ 블랙 항공 코일 케이블과 우측 상단 주황색 포인트 키캡으로 꾸며본 데스크 셋업

조금 더 개성을 살려보고자 갤럭시80 PRO 우측 상단 끝의 Pause 키 자리에 쨍한 오렌지색 포인트 키캡을 끼워 넣고, 두툼한 블랙 항공 코일 케이블을 매치해 주니 커스텀 키보드 특유의 감성이 한층 살아났습니다. 방향키 위쪽에 자리 잡은 가로형 일자 RGB LED 바와 우측의 별똥별 음각 배지도 과하지 않게 포인트를 잡아주어 외관만큼은 가격대를 훌쩍 뛰어넘는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갤럭시80 PRO 영문 각인 블랙 그라데이션 키캡 디테일

▲ 시각적으로는 매우 멋졌으나 한글 각인이 없어 초반 적응이 필요했던 기본 키캡

다만 디자인에 반해 덮어놓고 쓰기에는 사소한 장벽이 하나 있었습니다. 기본 장착된 그라데이션 키캡에 한글 각인이 전혀 없는 영문 단독 각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손가락이 기억하는 대로 무리 없이 타이핑을 하다가도, 특수문자나 헷갈리는 자판을 눈으로 확인해야 할 때면 순간적으로 손이 멈칫하곤 했습니다. 멋을 위해 실용성을 살짝 양보해야 했던 셈입니다. 물론 제대로된 매니아들은 일부러 한글 각인을 피하기도 하죠. 영문이나 일각이 더 정갈해 보이기 때문이죠.

한백옥축 V2의 도각거리는 타건음

갤럭시80 PRO를 쉽게 방출하지 못하고 한동안 아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스위치 소리였습니다. 제가 선택한 한백옥축 V2는 초기압력 30gf, 전도압력 42gf(±3gf), 바닥압력 47gf(±5gf)에 총 스트로크 3.5mm 사양을 가진 리니어 스위치입니다. 키압이 높지 않아 손가락 피로도가 적으면서도, 바닥을 칠 때 알루미늄 하우징과 만나면서 경쾌하고 단단한 로우피치의 도각거리는 음을 만들어냈습니다. 진짜 다른 건 다 몰라도, 타건감은 정말 맘에 드는 스위치였습니다.

▲ 직접 촬영한 VTER 갤럭시80 PRO 한백옥축 V2 실제 타건 영상

직접 녹음한 타건 영상을 들어보시면 알 수 있듯, 텅 빈 플라스틱 통울림 없이 조약돌을 부딪치는 듯한 정갈한 소리가 정말 좋았습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무거운 알루미늄 키보드를 찾는구나”라는 사실을 단번에 납득시켜 준 사운드였습니다.

물렁한 PP 보강판과 노브의 치명적인 불협화음

하지만 소리만 좋다고 완벽한 키보드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사용 기간이 길어지면서 구조적인 아쉬움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 바로 별도 옵션으로 추가 구매해 장착한 볼륨 노브였습니다. 이것도 티몬에서 대략 1만5천원 쯤에 구매했었어요.

갤럭시80 PRO F12 우측에 장착한 옵션 알루미늄 노브 모듈

▲ F12 키 우측에 핫스왑 방식으로 꽂아 쓰는 옵션 노브 모듈. 겉모습은 훌륭했지만 작동 안정성이 아쉬웠습니다.

갤럭시80 PRO는 F12 우측 자리에 일반 스위치 대신 전용 노브 모듈을 꽂아 쓸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촘촘하게 널링 가공된 실버 메탈 노브 자체의 만듦새는 꽤 그럴듯해 보였지만, 문제는 키보드 내부에 적용된 PP(폴리프로필렌) 보강판이었습니다.

타건할 때는 PP 보강판 특유의 유연함이 푹신한 손맛을 만들어 주었지만, 강하게 고정되어야 할 노브 모듈까지 보강판과 함께 출렁거리면서 접점 인식 불량과 오작동을 유발했죠.

볼륨을 조절하려고 노브를 돌리거나 음소거를 위해 위에서 꾹 누를 때마다 물렁거리는 PP 보강판이 아래로 휘어지면서 핀 접점이 흔들렸고, 의도치 않게 볼륨이 튀거나 클릭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일이 잦았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노브에 손이 잘 가지 않는 관상용 파츠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엔 가격도 싸지 않았다는…

하우징 유격 이슈는 다음 키보드를 찾게 만들었고…

이 모델이 가성비 풀알루미늄 대란 속에서 주류로 자리 잡지 못하고 아쉬운 평가를 받았던 결정적인 이유, 제가 쓰면서 정말 거슬렸던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키보드 맨 아랫줄(스페이스바 열)과 하부 하우징 베젤 사이의 마감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블랙 항공 코일 케이블을 연결한 VTER 갤럭시80 PRO 텐키리스 레이아웃

▲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깔끔한 텐키리스 비율을 보여줍니다.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볼 때는 전혀 티가 나지 않지만, 의자에 앉아 타이핑을 하는 실제 시야각에서 키보드를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판 하우징의 내경 단차 설계 탓인지 맨 아랫줄 키캡 아래쪽 공간이 유독 붕 떠 보였고, 스페이스바 아래로 흰색 내부 흡음재와 스테빌라이저 구조물이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보강판이 흰색이라 더 그랬어요. 컬러가 검정이면 그나마 나았을 것 같은데…수평이 맞지 않는 유격은 정말 참기 어려였어요.

갤럭시80 PRO 맨 아랫줄 스페이스바 하단 공간이 떠 보이는 유격 이슈

▲ 실제 타이핑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 스페이스바 하단 틈새로 내부 흰색 구조물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팜레스트와 결합한 갤럭시80 PRO 정면 수평 라인과 LED 바

▲ 두툼한 팜레스트를 앞에 붙여 시선을 분산시켜 보았지만 하단 들뜸 느낌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웠습니다.

키보드 앞에 팜레스트를 바짝 붙여 시야를 가려보기도 했지만, 한 번 눈에 띄기 시작한 하단 유격은 볼 때마다 묘하게 마감이 덜 된 듯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결국 이러한 디테일의 한계 때문에 이후 등장한 조약돌75나 레이니75, 크러쉬80 같은 후발 주자들에게 넘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 거슬리니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결국 지인에게 양보…

돌아보면… VTER 갤럭시80 PRO, 좋지만 아쉬웠다.
  • 만족스러웠던 점: 5만 원대라는 믿기 힘든 가격에 경험한 풀알루미늄 하우징의 묵직함과 한백옥축 V2의 수준급 로우피치 타건음
  • 아쉬웠던 점: 물렁한 PP 보강판과 맞물려 오작동을 일으킨 옵션 노브 모듈, 맨 아랫줄 스페이스바 하단이 붕 떠 보이는 마감 유격, 한글 각인의 부재

비록 노브의 불안정함과 하단 유격이라는 명확한 한계를 지닌 모델이었지만, 저에게 갤럭시80 PRO는 커스텀 키보드라는 새로운 취미의 문을 열어준 고마운 시작점이었습니다. 대략 1개월 정도 사용했었지만, 이 녀석을 통해 알루미늄 하우징과 보강판 재질, 스위치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차이를 체감했기에 지금의 정착기까지 즐겁게 달려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갤럭시80 PRO에 이어 다음 풀알루미늄 키보드 이야기에서는 또 다른 개성을 가진 모델의 기록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이전 키보드 입문기도 한 번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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